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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올해의 어버이상, 특별공로상, 감사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상 포상 후보자 추천의뢰

포 상 명

① 올해의 어버이상 - 장애자녀를 둔 부모 ② 특별공로상 및 감사패 - 장애인복지 관련 공적이 있는 자 ③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사장상 - 장애인근로자, 직업재활 관련 종사자

포상일시 및 장소(추후 공지)24년 제40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시 시상예정 (※ 9월 26일(목), 글레드호텔 예정)

선정인원올해의 어버이상 5개 분과별 총 10명 선정
특별공로상, 감사패는 선정위원에서 선정(인원 미정)

포상내용

① 올해의 어버이상 - 상금, 상장(한국장애인부모회장상) ② 특별공로상 및 감사패 - 기념패, 상장(한국장애인부모회장상) ③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상 - 기념패, 상장(한국장애인고용공단상)

추천접수2024년 5월 31일 (금) 까지

제출방법【표1】문의 및 접수처를 참조하여 해당 지역 접수처로 우편 또는 이메일로 구비서류 제출, ※ 접수 후 반드시 해당 지역 접수처에 확인 요망

선정위원 심사2024년 6월 ~ 7월

선정발표2024년 7월 ~ 8월 중 홈페이지 게재, 각 지회에서 연락 예정

구비서류【붙임자료】는 본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아 사용
홈페이지(www.kpat.or.kr) → 국고지원사업 → 전국장애인부모대회 → 자료실 게시

사업사진
56 개 4 페이지
  • 2014년 제30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시각장애분과]

    시각장애분과
    진정자
    자신의 자녀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느 부모에게나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을 위한 제도와 복지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며 선진국에 비하여 정착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장애인 자녀를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길러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장애에 대한 편견과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 어버이는 시각장애와 자폐성장애 및 중증의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를 입양하여 밝고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이 양육에 온 정성을 쏟은 것뿐만 아니라, 학교운영위원장 및 학부모회 임원으로 활동하여 장애학생 교육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장한어버이입니다.

    현섭이가 처음 맹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학교에 입학하였다는 기쁨은 정말 잠시였습니다. 현섭이는 학교 수업시간에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있지를 못하였으며, 선생님을 꼬집어 상처를 내는 등 갑작스런 돌발행동과 문제행동을 수시로 일삼는 아이였습니다. 이 어버이는 이러한 현섭이에게 1년 동안 꾸준하게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처음 훈련을 시작하였을 때는 뜻 한대로 잘 따라주지도 않고, 훈련을 하더라도 문제행동들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이 보이지 않아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이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눈물겨운 지속적인 지도로 1년 만에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힘든 훈련 끝에 구부러진 등의 자세가 조금씩 교정이 되기 시작했으며, 부모님의 동행 없이 혼자서도 교실을 찾아가는 것이 가능해졌고, 마주치는 사람에게 인사하기, 아무의 도움 없이 식당에서 자리 잡기, 혼자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1년 전 학교에서 자주 보였던 자폐성 행동들이 눈에 띄게 감소하였고, 친구들이랑 선생님을 꼬집는다거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등의 돌발행동들이 감소되었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부모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이며 끊임없는 노력을 한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이 어버이는 자녀가 중증의 중복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운영위원장과 학부모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학부모의 보행연수를 주도하여, 시각장애 자녀 교육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노력하였으며, 더불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자비를 사용한 꽃꽂이 활동 등 학교환경 개선을 위하여 꾸준한 봉사를 해왔습니다.

    이 어버이는 매사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태도로 자녀의 장애를 극복하고 양육을 위해 힘쓰셨으며, 학교발전과 주위 장애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모습이 다른 장애인부모들에게도 모범이 되기에 그동안의 헌신과 노력을 크게 인정하며, 그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배지혜

    이 어버이는 자녀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힘쓰며 훌륭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온 정성을 쏟으며 살아온 장한 어버이입니다. 특히, 자신의 자녀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 가족 및 자녀,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과 따듯한 지역사회가 되기 위해 힘쓰신 어버이입니다. 이러한 모범적인 모습들이 다른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과 학교 선생님, 지역 주민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 어버이는 자녀가 중증의 중도ㆍ중복의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얼굴로 자녀를 양육하며 2011년과 2012년 학부모회 총무, 2014 학부모회 부회장을 맡아 학교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어버이입니다. 중도의 중복장애를 가진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학부모회에서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학교 학부모들이 화합하고 서로 지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으며, 위기가정의 학부모 또는 학생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매년 1가정씩 선정하여 재활공학 기기 구입비를 지원하거나 학부모 스스로의 자활을 위해 자격증 취득 사업 등을 안내하고 학교교육활동의 주체로서 ‘1인 1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어르신과 중증장애학생들에게 음식 나눔을 통하여 사랑을 실천해왔습니다.

    이 어버이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여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셨으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보다 나은 쾌적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학교 조경 환경활동을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매년 가정의 달인 5월이 되면, 지역의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위한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고 실행하였으며, 지역사회 내 어르신들의 경로잔치를 진행하는 등 자신의 가정뿐만 아니라 즐겁고 화목하며 사랑이 넘치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하신 어버이입니다.

    이 어버이는 자녀가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장애자녀의 더 나은 학교 교육활동 및 재활을 위한 치료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아이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도록 아이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습니다. 또한 장애자녀 스스로가 자활할 수 있도록 도우며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이 어버이의 장애자녀를 위한 헌신적인 양육 및 지역사회 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한 따뜻한 사랑의 실천과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마인드는 지역주민들과 학교 교직원들 및 다른 장애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학부모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중증의 시각, 뇌병변, 지적장애를 가진 자녀를 양육하면서 생겨나는 사회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늘 꿈과 웃음을 잃지 않으시며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자녀 및 지역사회를 위해 무한한 사랑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공헌이 큼을 인정하며,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이 어버이를 “장한어비이상”으로 보답합니다.
  • 2014년 제30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지적장애분과]

    지적장애분과
    조경자
    ‘엄마는 강하다!’ 이 땅의 모든 어버이들에게, 특히 어머니라는 이름의 위대하고 강한 존재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장애인 자녀를 훌륭히 키우는 어버이 역시 강하고 위대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갑작스러운 자녀의 장애판정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하고 앞이 캄캄하지만 이내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밝고 명랑한 아이로 키운 강한 어버이가 있습니다.

    1남 1녀를 둔 평범한 어버이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발달이 조금 늦었던 아들의 청천벽력같은 장애판정을 받은 후 한동안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만이 나도 아들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무너지는 하늘 속에서 인정할 수 없는 아들의 장애판정을 모른척하며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들을 위한 길이 아님을 깨닫고, 아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자녀는 시도 때도 없이 밖으로 나가 2박 3일을 행방불명이 되기도 하고, 피 묻은 옷을 입고 들어오기도 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절망과 안도의 순간이 반복되었습니다. 끝내 부부가 교대로 일을 하며 아들을 지키고 보살피는 밤낮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들이 7세가 되던 해 조기교실의 언어치료를 시작했고, 어느새 ‘엄마’라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하염없는 기쁨의 눈물과 함께 작은 것에 감사하며 지낼 수 있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남들보다 1년 늦은 나이로 특수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재학하는 동안 학교의 대의원임원으로 활동하며 특수교육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며, 학부모회장도 도맡아 장애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고충을 함께 나누고 이끌었습니다. 또한 한국장애인부모회 서울특별시지회 창단멤버로 장애와 관련된 모든 일에는 발 벗고 나섰으며, 자녀들의 알찬 학교생활을 위해 보이스카웃 캠프 등 각종 행사 진행시 매번 참석하여 자녀들의 식사와 위생을 책임졌습니다.

    또한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는 하던 일도 그만두고 오로지 아들을 위해 매진하여 스케이트, 인라인스케이트, 수영, 여행 등 많은 활동을 하며 아들이 보고, 느끼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말도 못하고 숟가락질도 못하던 어린 아들은 어느새 혼자서 밥도 잘 먹고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밝은 표정과 훌륭한 인사성, 어디에서나 분위기 메이커로 가족, 친척, 친구 등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특수학교를 졸업한 뒤 복지관, 주간보호센터에 입소하여 지내는 동안에도 학교 내의 학부모 임원 및 회장을 도맡아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적극 참여하여 물적, 정신적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어버이 본인은 과로와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아들에게 만큼은 내색한 번 하지 않고 항상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아들의 교육적인 면뿐만이 아닌 아들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인식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강한 엄마, 조경자씨에게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한미숙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부모들이 가지는 똑같은 마음입니다. 자녀가 중증장애인이라도 부모는 자녀에게서 희망을 잃지 않고 더 많은 사랑을 줍니다. 부모가 내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내 자식을 사랑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부모들은 장애인 자식에게 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 자녀에게서 더 큰 희망을 발견하고 자녀를 위한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녀가 모두 장애인인 어버이는 자녀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매우 높으며 학교 내에서 학부모로써의 역할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등을 인지하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교육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은 물론 학교 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자녀를 위한 정보 교류나 인권신장에 대하여 남다른 애착으로 끊임없이 노력하였습니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부터 학생들의 생활능력 향상을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다른 학년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의 생활능력 향상을 위하여 가정과 학교 간의 교육 연대를 위하여 노력함으로써 학생들의 생활능력 향상에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더불어 학교 교육과정 속의 학부모의 역할을 인지하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교육활동, 현장체험학습, 자연친화학습 등에 학부모님들의 참여를 독려하여 학부모와 함께하는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의 학부모님들과의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여 장애인 복지정책 및 학교 교육 변화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여 학교의 발전과 방향에 대한 논의를 끊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또한 학교뿐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학부모회, 주간보호센터, 주변 학교의 학부모님들과 연계하여 학교교육 활동과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하여 세미나 및 토론회에 참여하여 학부모의 역량강화에 크게 기여를 할 뿐만 아니라 특수학교 학부모회의 활성화를 위하여 인근학교 및 지역사회 여러 단체와의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을 위하여 노력하고 상호간의 정보교환과 협력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장애인 부모가 자신의 자녀뿐만 아니라 다른 자녀에게 관심과 사랑, 봉사를 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시설보호 학생 및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개인 사정에도 관심을 가지며 도움의 손길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등 비단 자신의 자녀만이 아닌 장애인 자녀 모두를 본인의 자녀처럼 생각하여 살피고 보듬어 주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적인 봉사와 적극적인 학교 참여로 학교와 학부모회, 나아가 지역사회에 구심점 역할을 하며 학부모회가 내실화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 이 어버이에게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 2013년 제39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지체·뇌병변장애분과]

    지체·뇌병변장애분과
    도경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생활을 꿈꾸는 것은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소망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 어떤 이유에서든 원치 않은 방향으로 삶이 흘러갈 때 좌절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행복이란 것은 그 와중에도 다시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사랑과 애정을 듬뿍 쏟아 건강하게 키우다가 의료사고를 겪게 되었습니다. 개인병원에서 검진을 받다가 출산 무렵 시설 좋은 종합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사의 오진으로 분만지연에 따른 산소결핍이 문제가 되어 아들 순원은 뇌성마비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심정을 그 누구하나 이해하고 알아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언제까지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양 부모가 건강한 상태임을 증명하고, 의사의 무과실 입증 책임죄를 물어 병원을 상대로 7년간의 긴 소송 끝에 고법, 대법원의 승소판결을 받아 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현실을 피할 수 없으면 당당히 맞서라는 신념으로 억울한 장애인의료 피해자들로부터 소송에 대한 조언과 의료계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또한 아들 순원이가 특수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학부모회장을 맡아 활발히 활동함에 있어 장애인에 대한 폐쇄적 의식을 지닌 부모들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집안에서 방치되어있는 장애인과 부모들의 멘토 역할과 자존감 회복을 위한 부모교육을 위해 앞장서서 일해 왔으며, 장애인 가스차량을 처음 도입할 무렵, 대구광역시장과의 직소 면담을 신청함으로써, 장애인 차량의 필요성을 알리고, 장애인 주차구역 등 여러 장애인과 관계된 시설들을 건의하는 등 특수교육에 대한 환경 개선과 발전을 위한 공로를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2004년부터는 대구광역시장애인부모회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대구시 미술회원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여러 가지 특ㆍ입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회원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어 수익금 일부를 후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남편이 운영하는 병원을 통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운 장애인가족에게 의료지원을 주선하기도 하는 등 다른 장애인가정을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노력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항상 깨우치고 노력하는 자세로 공부하는 부모가 되기 위하여 뒤늦게나마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여 자격을 취득하였고, 더 나아가 장애인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50세가 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간호대학에 입학, 만학도로서 혼신을 다해 공부를 하며 당당히 간호사 자격을 취득하기도 하였습니다. 슬하의 비장애 자녀들 역시 부모에 이어 학생회장을 맡기도 하고 장학금을 받아 생활하기도 하는 등 훌륭하게 성장하였습니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며 노력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같은 아픔을 지닌 타인에게도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 함께 나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이 어버이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유수영

    장애인이 장애인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세상의 편견과도 싸워야 하며 본인 스스로도 흔들리지 않는 굳은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만 장애인의 자립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비장애인도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자립이 불가능하고 어렵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는 편견의 눈으로 장애인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세상의 틀을 많은 부분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수정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생후 1년이 지난 후 또래 아이들에 비해 거동이 늦음을 인지, 병원 검진을 통해 딸 나연씨가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난산으로 인해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뇌가 손상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손으로 집고 걸을 수 있는 장치를 해놓고 밤낮으로 훈련하고 여러 병원 치료와 갖가지 민간요법, 다양한 치료교육을 받아보는 등 부모는 나연씨를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이 어버이는 지금도 그 당시 유명한 한의원에서 몸에 좋다는 붉은색 돌가루를 비싸게 사들여 어루고 달래가며 딸에게 먹인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나연씨는 불행 중 다행으로 두뇌가 좋은 편이라는 의사의 말이 있었으나 지체장애가 너무 심해서 11살이 되어야 삼육재활학교 초등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버이는 나연씨를 일일이 업고 다니며 중학교ㆍ고등학교 졸업, 성분도 직업훈련원과 삼육재활학교에서 컴퓨터 교육도 이수하였습니다. 또한 사회진출을 위해 정보기능(컴퓨터)자격시험을 치를 때도, 방송통신대학 재학시절 시험기간에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2층~3층을 업고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자립정신을 강조하는 부모의 뜻을 잘 이해했던 나연씨는 이후 논산의 성모마을(중증장애인시설)에서 컴퓨터 업무를 담당하면서 장애인 이용자들 중에 취학이 불가능한 장애인들의 초등과정교육 담당교사로서 학습지도를 하였고 인터넷방송국에서는 웹디자이너로 활동하였으며, 현재는 장애인 자립생활지원센터의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어버이 역시 나연씨 못지않게 장애인들의 사회적 참여와 자립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1970년대부터 단독으로 언론 호소 및 국회에 서면건의(훗날 반영됨)를 하였으며, 1981년 제1회 장애인의 날에는 KBS방송국에서 1시간 생방송 단독좌담을 통하여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진출의 제도화와 사회의 편견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전면에 나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85년 한국장애인부모회가 창립될 당시 임원(감사)으로 참여하여 직원의 업무가 숙지되기 전까지 사무행정 및 경리회계 부분, 부모회 정관 및 규정 제정 등 업무를 맡아 하였으며, 전국에 지회ㆍ지부가 설립되면서는 지회ㆍ지부를 순회하면서 실무교육 및 의견조율 등의 활동을 하였습니다. 장애인부모들이 소망하듯 자식이 자립할 수 있게 방법을 길러주고, 장애인 스스로도 자립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이 어버이는 딸과 부모간에 피나는 노력과 의지를 험난하고 치열한 우리 사회 속에서 버텨가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이 어버이의 마지막 바람대로 한국장애인부모회가 우리의 활동공간을 더욱 크게 넓힘으로써 장애인을 위한 더 많은 사업이 전개되도록 거시적인 추진방안을 마련하고 부모가 자녀를 위해 본인의 사후를 걱정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임을 다짐하며, 이 어버이에게 작게나마 “장한어버이상”으로 노고를 치하하고자 합니다.
  • 2013년 제39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청각장애분과]

    청각장애분과
    안인자
    4kg으로 튼실하고 건강하게 태어나 잔병치레 한번 없이 자라던 아이가 14개월이 되어 갑자기 급성 뇌막염을 앓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기적적으로 다시 깨어났습니다. 하지만 병마의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게 된 아이는 청각장애인, 부모는 장애인부모라는 명칭을 하나 더 갖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장애인부모들이 그러하듯 처음 마주한 ‘장애’라는 단어 앞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고 아이에 대한 죄의식에 시달리며 아이의 미래는 부모가 책임져야 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 어버이는 아이가 특수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에 대한 정책들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나도 열악함을 피부로 느끼며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인권은 우리 부모들이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인 부모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동료 학부모들을 독려하고 힘을 모아 학교의 궂은 일을 도맡아하며 학부모회 임원, 회장을 역임하여 학교와 학부모의 교량 역할을 하는 등 학교교육발전에 이바지하였습니다. 나아가 청각장애인 부모들이 모여 활동하는 청각장애인부모회 회장을 역임하여 청각장애인 가족의 복지향상을 위한 세미나, 가족캠프, 보청기 지원, 보청기 현실화를 위한 대정부 건의 등 청각장애인과 부모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열정적으로 했습니다. 또한 우리 한국장애인부모회에서도 20여 년간 임원, 부회장,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면서 전국의 장애인부모들의 대변인으로서 한국장애인부모회가 우리나라에서 여러 장애인단체의 중심에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그 역량을 발휘하는데 이바지 하였습니다.

    올해 31살이 된 아들은 모든 학교교육을 마쳤으며,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통합인 취업에서 많은 좌절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아들을 격려하며 따뜻한 사랑으로 보듬어 현재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누나와 함께 카페 개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장애자녀를 둔 우리 부모들은 사는 동안 끊임없는 도전으로 우리 아이들이 우리사회에서 온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녀양육에 최선을 다함은 물론이며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사회 구현을 위해 많은 시간을 헌신적인 노력을 다한 위 어버이께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경점순

    이 어버이는 청각장애 2급의 두 자녀가 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25년 세월동안 한결같이 그림자처럼 자녀들의 귀와 입으로 살아왔으며, 어버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두 자녀 모두 현재 어린이집 교사로 활동하며 지역사회 아동복지를 담당하는 사회구성원으로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두 자녀가 사회인으로 장성한 후에는 종로구 구의원으로 활동하며 본인의 공약대로 시각, 청각 부모들의 모임과 가정방문을 통해서 장애 자녀 양육법, 장애가정에서의 부모 역할, 장애가정의 문제점 및 해결방안 등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상담하며 부모들에게 심리ㆍ정서적인 멘토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대학입시를 앞둔 시각장애학생들의 원활한 학습을 위해 수능 관련 참고서에 대한 점자교재 제작 사업비 지원’, 2013년에는 ‘시각장애학생 영어회화 향상에 필요한 어학실 구비를 위한 예산 지원’, ‘시각장애학생 사회통합 체험 지원’, ‘서울농학교 도서실 내 농유아를 위한 자료실 설치 지원’, ‘청각장애학생 기초학습능력 향상을 위한 교실 운영’, ‘청각장애학생 사회통합 체험 지원’ 등 교재 제작 지원을 통해 시각, 청각장애학생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습니다.

    또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의 인간다움 삶과 복지증진을 위한 「종로구 중증장애인 지원 조례」, 「종로구 장애인가족지원위원회 조례안」을 발의하였으며, 장애인의 통행권 보장 및 각종 시설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위한 대책 및 여성장애인의 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촉구하는 등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적극적은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어버이는 장애인 당사자의 부모로서 모범적으로 자녀를 양육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학생들과 부모들이 보다 나은 사회환경에서 성장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의정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공적을 인정하여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 2013년 제39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시각장애분과]

    시각장애분과
    유성희
    이 어버이는 장애자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밝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온 정성을 쏟으신 분입니다. 특히 자신의 자녀뿐만 아니라 더 어려운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활동을 통해 장애자녀를 둔 다른 부모님에게도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첫 울음을 터뜨리며 정식이가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백일이 되던 때 눈 맞춤을 하지 못하는 것을 느끼곤 병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진단 결과, 시신경 위축과 발달 미숙이라는 진단을 받고난 후 원망과 낙담은 이루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이 어버이는 이때부터 물리치료, 작업치료, 놀이치료, 심리치료, 음악치료, 감각통합치료 등 다양한 치료 교육을 통해 정식이의 교육에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정식이가 5세가 되었을 때는 고민 끝에 대전맹학교 유치원에 입학시켜 학교의 교육방침을 믿고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식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매일 등하교를 함께 했으며, 학부모회장으로서 학부모 휴게실을 개설하여 어버이들 간의 고민을 공유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교환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부모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서 소외된 장애자녀들에게 현장체험의 기회 및 상담을 제공하며 주위 학부모들에게 긍정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어버이는 현재 대전맹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대전광역시 학부모 모니터단 요원 및 학부모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상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주변사람들에게 긍정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학부모 모임을 통해 장애자녀를 둔 다른 부모님들과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학교 내ㆍ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장애인식 개선 및 학부모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알뜰장터 운영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대전맹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고, 학부모회로써 물심양면으로 든든하게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직원 입장에서도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교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노력하여 학생들을 가르쳐야겠다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자녀의 장애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주위에게도 널리 사랑을 베푸는 이 어버이에게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장경임

    이 세상에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자녀를 뒷바라지 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에는 자녀양육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신의 삶 보다는 오직 장애 자녀의 삶을 위해 배로 뒷바라지하며 살아갑니다. 장애 자녀가 희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홀로 설 수 있는 그날까지 장애인 부모는 헌신적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합니다.

    이 어버이는 2살 된 작은 아이를 업고, 5살 된 아연이의 손을 잡고 관악구 봉천동에서 종로구 신교동에 위치한 서울맹학교를 10년 넘게 오가며 굳은 각오로 마음을 다지며 하루하루 긍정적인 마음으로 아연이를 교육시켰습니다. 최근에는 학교 부근으로 이사하여, 아연이의 학교생활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외부 치료교육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이 어버이는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시각장애를 가진 자녀를 포함하여 가족을 위하여 헌신하며, 2001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맹학교 학부모회의 크고 작은 활동에 있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소 시각장애 학생의 교육과 복지를 위하여 남다른 사랑으로 아연이와 같이 시각중복장애 학생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여 주위에 따뜻함을 전파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 아이들에게도 늘 환한 미소와 애정으로 다가가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분이십니다.

    본인이 ‘흑인 강그리 난종’이라는 병이 손목에 생긴 줄도 모르고, 정기적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 아연이를 돌보고, 남다른 봉사정신으로 주위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느라 정작 본인의 병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몸으로 가정을 위해 19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중복장애가 있는 딸을 뒷바라지 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이 어버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장애를 가진 자녀와 다른 가정의 장애자녀를 위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실천자로서 충분한 자격이 되기에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 2013년 제39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지적장애분과]

    지적장애분과
    이선화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장애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고통과 슬픔은 더할 나위 없지만 더욱이 시부모님을 공양하며 장애자녀를 훌륭히 키우고 있는 이 어버이가 겪은 양육에 따른 어려움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어버이는 지체 공립 특수학교의 고등부 3학년에 재학 중인 발달장애 (지적장애 및 자폐성 장애) 2급의 자녀를 둔 부모로 시부모님에 대한 공양과 함께 장애자녀의 교육을 위해 헌신해 왔으며, 또래 아이들이 잘하는 재롱 한번, 시원한 대답 한번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아이의 장애를 발견하면서부터 자녀의 재활을 위한 치료와 교육을 위해 매진하였습니다.

    어버이는 내 아이 하나만을 내 자식으로 생각 않고, 우리 학교 아이들 모두가 내 아이라고 생각하고 학부모회를 앞장서서 이끌고 학교 전체 학생의 어머니이자, 학교 전체 학부모의 대표, 어머니들의 동료, 언니, 동생임은 물론 최고학년 고3 학생의 부모로서 후배 부모들의 상담자이자 조력자가 되고, 서울정문학교 학부모회장으로서 어려운 장애학생 부모들을 대신해 특수교육의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침체된 학부모회를 활성화하고자, 적극적인 자세로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장애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 부모들을 지원하였으며, 부모들 간의 소통을 위한 부모회 홈페이지를 개설하였으며, 학부모 월례회, 부모 동아리 활동을 이끌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시교육청 학교 참여 학부모 지원사업에도 계속적으로 참여하여 학교활동 모니터링과 학교 가꾸기 활동, 부모교육 활동, 장애가정나눔활동, 문화체험 활동 등을 통해 어려운 장애 가정의 부모님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이끌고, 특수학교 학부모회 활동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이 어버이는 단 하나의 자식에 대한 욕심을 접고 열악한 환경의 학부모회를 이끌어 정문학교 학생 모두의 어버이가 되어 정문 가족이 보다 끈끈한 교육 공동체 한 가족이 되게 해준 이 어버이에게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김은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론 매우 혹독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할 때, 준비되지 않은 채 어려움과 마주할 때, 우리는 삶의 고단함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장애자녀의 부모가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어려운 환경과 직면하게 될 때, 우리 부모님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자녀를 훌륭히 키워낸 어버이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20여 시간의 긴 진통 끝에 모든 가족의 축복 속 에 태어난 딸 아이는 모든 부모의 마음처럼 기쁨과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발육이 늦어져도 설마 내 아이가 장애가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서 조차 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병원에서는 6개월 물리치료 후에도 혼자 서지 못하면 영원히 걸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딸 아이가 지적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길게 앉아서 낙심할 시간도 없이 꼭 걷게 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를 하고 힘겨운 물리치료로 인해 눈가에 실핏줄이 모두 터지는 딸 아이를 보며 함께 울기를 5개월, 이후 딸 아이는 혼자 서고 걷고를 반복해서 연습한 끝에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비장애인과의 차이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달으며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통하여 최대한의 아이의 능력을 끓어내기 위하여 학교에서의 모든 생활과 특별활동을 빠짐없이 참여하였습니다.

    이 어버이는 딸 아이가 점점 커감에 따라 미래는 아직도 불투명한 현실에 부모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1999년 은평대영학교 부모회장을 시작으로, 한국장애인부모회 분과위원과 지적장애분과 부회장으로 10여 년간 한국장애인부모회에 몸담아 장애계의 발전을 몸소 느끼고 변화를 경험하면서 다른 장애영역도 마찬가지겠지만, 무엇보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로써 자기결정권이 부족한 자녀들의 눈과 귀가 되어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참여를 유도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2002년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창립회장 당시, ‘장애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겪어야 하는 일상적인 일들을 어떻게 줄여 나갈 수 있을까’가 그 시기에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이에 언제나 우리 부모들에게 힘을 실어주던 사회복지사들과 부모님들로 구성된 조를 짜서 시장과 상가, 그리고 버스 기사 분들에게는 장애인들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으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인형극을 통해 장애의 이해를 돕고, 인근 중학교에서는 직접적인 장애 체험 등을 통해 장애인식교육에 힘을 썼습니다.

    위와 같이 희망을 잃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는 이 어버이에게 용기와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 2012년 제28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지체·뇌병변장애분과]

    지체·뇌병변장애분과
    김진하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장애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고통과 슬픔은 더할 나위 없지만 더욱이 청각장애가 있는 연로한 몸으로 아내 없이 홀로 장애자녀를 훌륭히 키우고 있는 이 어버이가 양육에 따른 어려움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진하씨는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둔 단란한 4인 가족으로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처가가 유전적으로 뇌실조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서 아내 역시 오랫동안 장애를 가지고 생활하였으나 아들, 딸과 함께 열심히 행복하게 생활하였습니다.

    유전으로 딸 역시 뇌실조증을 앓고 있었는데, 고등학생일 때까지 참한 외모와 우수한 성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사교성이 활발하여 대인관계도 좋았습니다. 이런 예쁜 딸의 병이 급격히 심해져 24살이 되던 해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이듬해 아내마저도 뇌실조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집안이 힘들어지자 아들은 어느 순간 아버지를 남겨두고 집을 떠났고, 현재는 간간히 연락만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딸의 교육과 건강을 위해 하루 빨리 완쾌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직장도 포기한 채 16년 동안 이 병원, 저 병원 동분서주하며 재활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였고, 복지관에도 왕래하며 딸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였습니다. 딸의 재활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하시며 자녀양육에 혼신의 힘을 다 하시는 이 어버이의 가장 큰 걱정은 연로한 자신이 딸보다 먼저 사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사망하였을 때 장애가 있는 자녀가 어떻게 혼자서 살아 갈 것인지가 가장 걱정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복지관에서도 일반 취미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재활과 자립을 위해 할 수 있는 요리, 스포츠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딸의 병이 점점 악화되어 현재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딸을 위해 이 어버이는 하루에 한시간 이상 편하게 잠을 잔 적 없이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현재 허리가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하고 딸을 케어 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으로 인근 주민에게도 귀감이 되어 칭찬이 자자합니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연로함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자립과 교육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이 어버이의 훌륭한 성품과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장한어버이상”을 통해 이 어버이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합니다.
    임영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론 매우 혹독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할 때, 준비되지 않은 채 어려움과 마주할 때, 우리는 삶의 고단함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장애자녀의 부모가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어려운 환경과 직면하게 될 때, 우리 부모님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자녀를 훌륭히 키워낸 어버이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난산으로 인한 산소결핍이 원인이 되어 뇌손상을 입고 태어난 효주는 사랑으로 보살핌 받을 겨를도 없이 생후 15일 만에 폐렴에 의한 병원 입원과 함께 심장병과 녹내장으로 먹지도 못하고 울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였고, 효주는 돌이 지나서야 양쪽 눈을 수술하고 겨우 실명을 막았습니다. 매일 재활훈련을 해야만 하는 효주가족에게 당시 육군 대위로 강원도 최전방에 근무하던 남편의 상황까지 더해져 이 모녀의 모습은 마치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습니다.

    군의관들에게 의지하고 하루에도 수시로 걸리는 감기와 경련을 다독이며 재활훈련을 하였지만 더욱 심해진 경직으로 9~10살인 어린 효주는 4번의 큰 수술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수술 후 겨우 휠체어에 앉히고 11살이 되어서야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었으며, 10번의 이사와 동생 둘을 낳아 길러가며 살아온 이 어버이의 삶은 오로지 살아야만 하는 강한 의지 외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없었던것만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이 인천공항으로 이직하면서 인천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수도권이기에 장애인에게 더욱 좋은 환경일 거라는 생각은 현실과 부딪쳐 산산이 깨졌습니다. 이에 이 어버이는 인천은광학교의 학부모회장을 3년 동안 연임하며 흩어진 학부모회를 재결집시키고 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직접 인천광역시지회를 찾아가 이사직과 부회장을 맡아 장애인복지에 앞장서 움직이고, 인천광역시지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회원들과 함께 2007년 9월 뇌병변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설립하여 중증장애부모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여성가족부지원사업인 장애아가족 아동양육지원사업을 통해 국가 예산과 인천광역시 예산을 추가로 지원받아 인천에서도 취약한 환경의 장애인 가족을 직접 찾아가서 상담하고 지원하여 노력한 결과 2009년 시범사업 완료 평가에서 당당히 전국우수시행단체로 상을 받는 영광을 안는 등 3년의 임기동안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본인 자녀의 복지혜택 향상을 넘어 지역사회의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환경, 생활환경 개선에 앞장서 지역사회의 전반적인 장애인복지환경을 향상시키고 장애인가정에 희망과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이 어버이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 2012년 제28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청각장애분과]

    청각장애분과
    박석자
    이 어버이는 어렵고 힘든 가정환경 속에서도 어언 10여년을 친부모도 아닌 외조모임에도 불구하고 외손자인 이지환군을 양육하면서 물심양면 헌신적인 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1998년 파란 눈, 얼굴에 반점을 가지고 태어난 외손자 지환이는 생후 3개월즈음 청각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장애 진단 이후, 지환이 아버지는 장애자녀로 인한 많은 갈등과 고민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지환이 어머니와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환이 어머니는 지환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 어버이의 삶은 오로지 지환이에게 맞추어 졌습니다. 지환이에게 부여되는 크고 작은 과제들을 늘 돌보시고 대화하며 바른 것을 가르치려 애쓰십니다. 직접 경영하시던 횟집까지 문을 닫고 지환이의 치료교육에도 매진해야 했습니다. 생후 18개월까지 걷지 못했던 지환이를 늘 업고 다니며 언어기관을 찾아 다녔습니다. 또한 지환이가 다니고 있는 한국구화학교에서 학부모회 간사, 학부모회장,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대표, 학교급식모니터요원 등 학교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학부모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이 있을 때면 교사를 대신해 학부모님들에게 과감하게 전해주시고, 반대로 학부모의 의견을 솔직하게 나누어 주시며 교사와 갈등 중인 학부모님과는 상담을 통해 학부모와 교사들간의 대화소통의 창구역할을 도맡아 하시는 이 어버이는 학교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분이십니다.

    외손자 지환이도 외조모의 지극정성에 힘입어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해나가는 착한 학생으로 표현력과 학습수준도 갈수록 향상 되어가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이 어버이는 어려운 살림에 본인의 노후 생활도 힘들어 좌절할 수도 있으나 모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외손자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학부모의 도리를 다하시는 모습에 감복하여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김영미

    장애영역이나 정도에 따라 장애인의 특성은 다르지만 장애로 인한 고통, 사회의 편견이나 불이익은 어느 장애인이나 다를 바 없으며, 특히 듣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말하지 못하는 아픔까지 함께 겪으므로써 사회생활에 제약이 따른다면 이는 참으로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며, 청각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겪는 고통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어버이는 첫째 딸 윤지를 낳고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행동을 보고 단지 ‘아니겠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을 뿐이야!’, ‘내 아이는 아니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윤지가 청각장애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도 함께 동반한 중복장애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어버이는 자녀의 장애진단에 몇날 몇일을 울기도 많이 했지만 금새 울음을 멈추고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강한 모습으로 윤지 곁에 있어야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굳은 각오로 마음을 다지며 하루하루 긍정적인 마음으로 윤지를 교육시켰습니다.

    중복장애를 갖고 있다 보니 다른 장애자녀보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인내를 가지고 하나하나 가르치며 윤지와 대화하기 위해서 수화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이런 어머님의 열정으로 인해 윤지는 학교에서 명랑한 성격과 수업 중에도 적극적인 태도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아이로 밝게 자랐습니다.

    이 어버이는 자녀 교육에 정성과 열정을 다 하면서 학교 교육에 열성을 보이던 중 2011년 학교운영위원장으로서 학교교육 환경, 교실 수업 개선, 학부모 학교교육 참여활동 활성화, 학생 교육 활동 지원 등 학교 발전에 힘을 쏟았으며, 2012년에는 학부모회 임원으로서 학교 교육과 학부모 협력을 도모한 공이 크고 다른 학부모들에게 귀감이 되므로 “장한어버이상”을 추천합니다.
  • 2012년 제28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시각장애분과]

    시각장애분과
    김영미
    이 어버이는 장애자녀의 중복장애와 암과의 투쟁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온 정성을 쏟으시는 분입니다. 특히 자신의 자녀뿐만 아니라 더 어려운 학생들을 돌보시어 장애자녀를 둔 다른 부모님에게도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재경이는 백일 무렵 안구진탕증이라는 진단과 함께 지적장애를 동반하였으며, 초등학교 무렵 뇌종양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의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은 재경이는 식물인간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버이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날마다 재경이를 휠체어에 태워 재활치료를 다녔으며, 놀랍게도 병원에서 퇴원할 정도로 회복 되었습니다.

    뇌종양으로 인해 일반학교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떨어진 재경이는 시각장애 특수학교로의 입학이 결정되었으며, 건강 증진과 중복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주야로 노력한 결과 6학년 과정부터는 재경이가 학교생활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학교 학부모 모임을 통해 장애자녀를 둔 다른 부모님들과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학교 내의 학부모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자녀의 장애로 인해 큰 슬픔에 빠져있는 본교 학부모님들을 격려하고, 자신의 실질적인 경험을 공유하며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이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각장애를 가진 중복장애 학생들을 위해 직접 ‘입체북’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나눠주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자녀와 함께 트로트를 익혀 교·내외 행사에서 선보임으로써 학교 학생 및 교직원, 참석자들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기량을 뽐내었기에 자녀의 적성지도에 있어서도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십니다. 자녀를 돌봄에 있어 여러 가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생들을 보살피는 일에도 적극적 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부모와 떨어져서 생활하거나 충분한 보살핌이 필요한 학생들을 친 자식처럼 챙겨주시는 어버이입니다.

    자녀의 장애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주위에게도 널리 사랑을 베푸는 어버이에게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강영미

    이 어버이는 시각장애를 가진 자녀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이 발견하고 그 재능이 미래의 꿈을 향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사랑과 열정으로 헌신하고 계십니다.

    지선이는 초등학교 무렵 피아노를 배우다가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린 선생님의 권유로 인해 남편과 시어머니를 뒤로 하고, 지선이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한빛맹학교에 입학하여 학교 수업과 바이올린 수업을 병행하였으며, 취미가 아닌 전공으로 바이올린을 시작하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이올린은 자세가 중요한데 시력이 없어 자신의 자세를 보지 못하는 지선이를 위해 엄마 스스로가 지선이의 눈이 되어 자세를 전달해야 했으며, 점자 악보를 구해주기 위해 직접 점자를 배우고, 악보를 독학하며 지선이에게 눈과 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에 지선이는 점차 바이올린에 대해 더욱 흥미를 느끼고, 실력 또한 나아져 갔습니다.

    2004년 동아음악 콩쿠르에서 최우수상, 2008년 선화음악 콩쿠르에서 은상, 2010년 음악춘추 콩쿠르에서 2등, 2011년 이와음악 콩쿠르에서 3등을 수상하였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영재코스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으며 한빛예술단 현악팀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선이의 꿈은 바이올린 연주자 이작크 펄만, 장영주처럼 세계적인 무대에서 바이올린 연주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대한민국을 알리는 당당한 연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장애, 비장애로 평가받지 않고 온전히 음악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감동을 전하는 연주자 말입니다. 지선이가 이런 꿈을 펼치고 계획할 수 있기에는 이 어버이의 땀과 노력, 눈물과 기도가 좋은 양분으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린 시기부터 시각장애 자녀에게 다양한 경험과 양질의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조기에 발견하여 교육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시각장애 영역에서는 불모지와 다름없는 현악부분에서 비장애 학생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뒤에서 헌신한 이 어버이입니다. 자녀의 꿈과 미래를 위해 희생하며 직접 발로 뛰고, 노력하며 다른 어버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이 어버이에게 “장한어버이상”으로 보답합니다.
  • 2012년 제28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지적장애분과]

    지적장애분과
    여취미
    이 어버이는 외국인으로서 타국에서 겪어야 하는 사회적인 벽과 장애부모로서의 좌절에 직면해서도 오직 장애자녀인 수인이가 장애를 극복하고 밝은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지난 15년간을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수인이는 태어난지 불과 몇 일만에 심한 황달 이후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겪었습니다. 잘 먹지도 못해서 남들보다 성장 속도가 느렸고, 잘 걷지도 못해서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수인이를 위해 수인이 부모님은 15년 동안 주말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걷기, 자전거타기, 수영, 인라인스케이트, 등산 등을 통해 수인이의 근력과 다리의 힘을 길러 주었습니다. 또한 4세 때부터 병원, 복지관, 특수교육 관련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언어·인지·미술·그룹치료 등을 이어오고 있으며, 얼마 전부터 레크댄스, 사물놀이 등의 교육을 통해 수줍음이 많고 비교적 사회성이 떨어지는 수인이에게 협동심과 사회성을 길러주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수인이는 현재 수원서광학교에서 중학부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 어버이는 학교생활 지원에 있어서 바쁜 생활 와중에도 준비물과 과제 등을 빠지지 않도록 잘 챙기고, 학교 일에도 항상 적극 협조하는 열정을 보이며 수인이를 등교시킬 때에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고 늘 깔끔한 차림으로 등교시켜 학교 내에서도 타 학부모들에게 귀감이 될 만합니다.

    지난 4년간 학부모회 임원, 교원능력개발평가 관리위원,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위원직을 맡아, 장애자녀 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부모들의 자조모임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와 격려를 해주며 언제나 웃는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타의 모범이 될 만합니다.

    ‘저는 수인이에게 죄인입니다. 수인이가 즐거운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든 죄인입니다.’ 대부분의 장애인 부모들이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듯이, 수인이 어머니도 역시나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십니다. 자기 연민에 의한 슬픔이 없지 않으시겠지만, 그것을 느끼는 자체도 사치이거나 시간낭비로 여기고 수인이 어머니는 지금도 치열하게 수인이의 장애극복을 위한 교육과 ‘행복주기’에 매달리고 계십니다. 고수익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도 수인이의 행복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겪어야 하는 신경쇠약증과 같은 어머님의 아픔도 수인이의 행복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난 15년간 변함없이 쉬지 않고 수인이의 교육과 행복에 매달려 온 이 어버이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구춘화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열악한 시기에 일상생활에서부터 교육 등 모든 삶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차별을 받는 현실 속에서 장애자녀의 기본권을 넘어 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으로 어머니의 강한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아름다운 어버이가 있습니다.

    이 어버이는 다운증후군 자녀를 길러내신 훌륭한 부모로, 장애자녀의 행복을 위한 부모들의 조직화와 장애인복지발전을 위한 담론을 통해 장애자녀들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996년 YMCA 가야사회종합복지관 자문위원 활동을 시작으로 지역 자치 위원의 활동을 통해 장애인 부모들의 고충을 사회에 알리며 발달장애자녀 부모들을 위해 지역사회의 관심과 협력을 이끌어내고, 군포시장애인부모회를 이끈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가족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장애인부모회의 경기도 조직을 이끌어가는 지회장을 역임하며, 경기도 장애인부모들의 대표로서 장애인가족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토론 및 연구 참여에서부터 시·군 지부 운영을 위한 지원 및 교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고 더욱이 장애자녀 양육의 체계적인 서비스를 위한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설립에 크게 기여하여, 장애인복지의 새로운 영역으로 가족지원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만드셨습니다.

    또한 장애자녀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치며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교육들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특히 장애자녀의 완전한 사회통합과 자립생활을 위하여 신변처리부터 대중교통 활용 등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훈련들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 발달장애인 사회적응훈련센터를 개소하고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많은 성인기 발달장애인이 센터를 통해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어버이는 당신의 자녀를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하도록 훌륭히 양육하신 장애부모이면서 다운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다운가족을 감싸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실천자로서 충분한 자격이 되기에 “장한어버이상”을 드립니다.
  • 2012년 제28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 올해의 어버이상 수상자 [자폐성장애분과]

    자폐성장애분과
    이경근
    ‘행복의 열쇠는 오늘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달려 있습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 변화와 내 역할을 이해하고 안고 가는 것,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소망을 갖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어버이가 있습니다.

    이 어버이는 4살 무렵부터 식사를 거부하여 쥬스만 먹다가 일 년 뒤 결국 저체중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된 두용이를 위해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학교의 급식은 먹을 수 없어 중학생 때까지 매일 점심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싸주었고, 이런 정성어린 노력으로 두용이는 비록 다른 아이보다는 작지만 정상범위의 발달까지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어버이는 자녀의 치료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완전통합 유치원과 조기교실에서의 특수유치원을 병행하였고, 초·중학교도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기 위해 매일 복도에서 두용이를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는 한국육영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비롯한 미술지도를 통한 작품활동까지 하였으며, 현재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취업도 도서관 사서도우미를 거쳐 현재 송파우체국에서 활동보조 선생님의 보조로 일하게 되어, 작은 능력을 찾아 사회의 한 일원으로 일하는 두용이의 모습을 보게 되니 정말 행복과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서대문 결핵촌에서의 환자 봉사와 20년 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번역기 프로그램 개발에 함께하면서 밀알재단 실행위원으로 위촉받아 장애인 전체의 삶을 바라보며 내 아이 한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장애인을 제도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고 있는 남편의 곁에서 내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장애아동 부모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씩 소그룹 모임을 갖으며 리더로서 그동안의 경험과 정보를 함께 나누며 다른 부모들을 돕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른 부모들을 돕고 사회적 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이 어버이에게 용기와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장한어버이상”으로 위로와 격려를 보내드립니다.
    김봉규

    장애인에 대한 바른 인식과 이해가 있어도 내 자녀가 장애인이 된다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오직 장애자녀를 위해 여생을 희생하고, 비장애자녀처럼 될 수 있도록 동분서주하며 기적을 바라게 되는 것이 장애인 부모와 가족들의 처절한 삶이기도 합니다.

    이 어버이는 1994년 5월 24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막내 아들을 얻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이었으나, 4살 무렵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하며 의사표현을 못해 자신을 학대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반복되어 병원을 찾으니 이름조차 생소한 자폐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미어지는 복잡한 마음을 추스릴 틈도 없이 그날 이후 석림이는 아파트 고층에서 사진이며, 종이, 의자 등 손에 닿는대로 물건을 던지곤 해 결국 1층으로 이사를 했고, 그 후로는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가는 통에 모든 문에 잠금장치를 하는 등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집에서 뛰쳐나가는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적도 수십 번이어서 가슴을 쓸어내릴 적마다 차를 태우고 나가 아이의 고집을 꺽으려 매를 들고 야단치기도 하였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어김없이 집을 뛰쳐나가 아이를 찾던 중 미아방지 목걸이를 보고 연락을 주신 분에게 단호하게 아이를 야단쳐서 혼자 집에 찾아오게 해달라며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화주신 분은 아무리 아이가 장애가 있어도 감싸지는 못하고 야단을 친다며 이 어버이를 이상한 사람, 모진 사람으로 몰았었고, 다행히 그날 아이는 혼자 집으로 잘 찾아왔습니다. 그때 ‘아! 훈련하면 나가서도 집을 찾아올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석림이가 도망가도 붙잡지 않았고 서툴고 다치더라도 미리 도와주기보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도했습니다. 그 결과 집을 나가는 횟수도 줄고 이제는 밥 짓기, 상 차리기, 청소하기 등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질고, 나쁜 어버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각박하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먼훗날 혼자 살아갈 장애자녀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현재 직업기술을 배우며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신 이 어버이는 모든 장애인부모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장한어버이상”으로 작은 보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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